마가복음

저자 : 마가

마가가 베드로에게 들은 것을 기억하는 대로 모두 정확하게 기록했다는 진술과 순서대로 하지 않았다는 기록도 불투명하다. 그가 ‘정확하게’ 기록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지 과연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이 그 모든 내용을 재생해 낼 만큼 정확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도 의문시된다. 마가복음이 마가 요한의 작품이었다는 판단을 하기엔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마가복음 내부에서 저자가 마가 요한이었다는 그 어떤 흔적도 없는 것이다. 마가복음의 저자 문제에 대한 좀더 합리적인 대안은 저자의 이름 정하기에 매달리기보다 그 저자의 배경을 다각도로 추론해 보는 것이다. 


저작 시기 및 장소 

4복음서의 저작 시기는 기원후 100년 전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통적으로는 마태복음이 가장 먼저 쓰여졌고 마가복음은 그것을 축소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마가 우선설이 그 설득력을 인정받게 되면서 마가복음이 가장 먼저 쓰여졌을 것이라는 주장은 점차 정설로 굳어지게 되었다. 마가복음이 마태복음을 축소한 것으로 보는 시각보다 마태복음이 마가복음을 수정, 갱신하고 다른 자료로 중보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공관복음의 기원 문제를 푸는데 더 합리적인 선택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저작 동기 및 목적 

마가는 마가복음을 생산함으로써 자신이 속한 신앙 공동체의 삶 가운데 어떤 식으로든 보탬이 되고자 했을 것이다. 마가복음은 복음서의 주인공 예수를 총체적으로 소개하려는 의도가 작용했으리라 보인다. 저자는 해당 신앙 공동체의 제의 가운데 몸과 피를 주며 영적으로 현존하는 그 예수가 바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면서 가르치고 병자를 고친 인물이자 동시에 십자가에 달려 세상의 죄악을 대속하고 부활, 승천한 그 인물임을 밝히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강조가 장차 다가올 제자들의 수난 예고와 겹쳐 등장하는 데는 필시 또다른 곡절이 있는 듯하다. 추측컨대 마가 공동체가 핍박의 상황에 이미 처했거나 아니면 앞으로 다가올 핍박의 조짐을 반영한다. 견디기 어려운 핍박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그 고난을 통해서만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제공하고자 한 것이다. 유대교의 한 종파쯤으로 치부되던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와 분립된 그 신앙적 정체성을 고수하는 과정에서 로마 정부로부터 받는 공공 생활에서의 정치적 억압이 적지 않았으리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특히, 이교도의 신들을 경배해야 하는 로마의 공공 행사나 종교 축제에 참여해야 하는 부담을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해소해야 했을 것이다. 


문체 및 구성상의 특징 

마가복음의 문체는 헬라어의 특징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그리고 마가복음에는 특정 사건이나 인물의 감정 표현에 생략보다 생생하고 역동적인 묘사를 보여주는 경우가 허다하며 정서적 표출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전달된다. 또다른 특징은, 앞서 지적한 대로, 같은 양식끼리 묶어서 배열하고 편집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구성을 통해 저자는 한 단위의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를 해석하거나 이해를 돕는 효과와 강조, 핵심 주제를 지시하는 방향으로 일정한 복선을 까아두기도 한다. 또다른 특징은 예수의 청중들을 내부자 집단과 외부자 집단으로 이분화하는 것이다. 예수와 가장 가까울 것 같은 예수의 가족과 종교적인 지도자들은 예수를 오해하고 거부하며 대표적인 외부자 집단을 형성한다. 이에 반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로서 사역의 일선에 서도록 부름을 받은 제자들은 종교적 지도자도 아니고 예수와 혈통을 나눈 가족도 아닌 자들로 대표적인 내부자 집단을 형성한다.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또는 메시아로서 이 땅에 온 예수의 정체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기적 성격이 짙고 아울러 그의 공적 소명과 사역을 비교적 상세하게, 다양한 맥락 속에 묘사하고 있는 점이 마가복음을 전기문학으로 규정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예수의 탄생설화가 빠져있는 점이나 예수의 일생 전체를 대상으로 하지 않고 몇 년 간의 고생애에 추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등이 결격요인이다.


서사 구조 및 내용 

구조 분석의 기준은 예수의 사역이 어디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따른 서사의 흐름이다. 말하자면, 예수의 사역은 갈릴리라는 한 지역을 거점으로 시작되고 그곳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예수가 그곳을 벗어나 유대 땅 예루살렘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한 사건의 전환점을 이룬다. 그러므로 갈릴리와 예루살렘 사이의 지리적 대립 구도로 마가복음 전체를 나누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1. 도입(1: 1 - 13)
  2. 예수의 갈릴리 사역(1: 14 - 5: 42)
  3. 갈릴리 안팎으로의 여행과 사역(6: 1 - 10: 52)
  4. 예루살렘에서의 사역(11: 1 - 14: 31)
  5. 수난과 부활 이야기(14: 32 -16: 8)
  6. 후기(16: 9 - 20)


마가 공동체의 ‘삶의 자리’

첫째, 마가 공동체의 신학적 정체성에 관한 문제마가 공동체는 당시 신흥종교로 발돋움한 그리스도교의 한 세력으로 어떻게 유대교와 상호 작용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수립해 나갈 수 있을까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율법적으로 가하냐'하는 문제나 ‘음식을 먹기 전 손을 씻는 규례는 꼭 지켜야하는 것이냐' 따위의 문제에 대하여 당시 유대교의 전통적 관례대로 따라야 할지, 일부 이탈해도 무방한지 나름의 대응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로 인한 마찰 끝에 마가 공동체가 택한 방식은 율법의 문자적 자구에 집착하기보다 그 근본 정신에 착안하여 좀더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이었다. 

둘째, 마가 공동체의 선교적 비전에 관한 문제마가 공동체의 선교적 비전은 유대인과 유대교를 넘어 이방 세계의 다양한 비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마가복음에는 이방인을 향한 선교적 관심이 강하게 투사되어 있음이 확인된다. 유대인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유대인의 경계를 넘는 개방적인 선교신학이 당시 마가 공동체의 주류였음을 반영한다. 

셋째, 예수의 재림과 종말론의 문제마가공동체는 세상의 종말에 대한 긴박한 의식을 가지고 그것을 예수의 재림 사건과 연관시켰으리라는 판단이다. 종말은 하늘의 천사도, 예수도 알 수 없고, 오로지 하나님의 결정에 달려있다. 긴박한 종말론의 제시로써 저자는 그들의 해이해지기 쉬운 의식을 일으켜 세우고 깨어 있도록 그 신앙적 자세를 진작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넷째, 수난과 핍박의 현실에 대응하는 방식의 문제예수 재림과 더불어 즉각적으로 죽은 자들이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성급한 기대로 들뜬 마가 공동체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높아지고자 하는 자의 낮아짐과 낮추는 자의 높아짐은 단순히 겸손이라는 윤리적 요청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수난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강조된다. 


마가 신학의 기본 주제

  1. 그리스도론 

 먼저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를 살펴보자. 본래 이 칭호는 헬레니즘 문화권 가운데 특출한 영웅을 가리켜 사용하는 문구였다. 세례 때 예수에게 들려진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하늘의 음성은 그가 신성한 왕으로서의 위격을 인정받고 그 자리에 등극하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있다. 그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정체성은 마침내 그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뒤에야 백부장의 입술을 통해 공중들에게 확연히 증언된다. ‘하나님의 아들'과 통하면서도 그 정반대에서 논의되는 주된 타이틀이 바로 ‘사람의 아들' 곧 ‘인자'이다. 다니엘서 본문에서 인자는 하늘 구름을 타고 강림하는 신화적인 존재이다. 이 점에서 그의 이미지는 재림과 종말의 맥락에서 묘사된 예수의 인자 이미지와 부분적으로 겹친다. 마가복음의 인자 예수에게는 자신의 왕적인 신분이 고난을 통과할 때라야만 비로소 그 목표가 성취되리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예수에 대한 그 밖에 칭호로 ‘그리스도', ‘왕' 등이 있다. 이러한 모든 칭호는 예수의 고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이런저런 타이틀 속에 내장된 예수의 정체와 그에 걸맞는 사역의 향방이 오로지 수난과 죽음의 역정을 거쳐 확인되고 확신되는 측면이 두드러진 것이다. 

  1. 십가사와 고난의 신학 

마가복음에서 십자가는 영광의 상징이기에 앞서 고난의 상징이다. 아니, 그것은 단순히 상징이기에 앞서 체험의 현실이고 역경의 운명을 향한 결단의 대상이다. 마가복음은 그 주인공 예수의 정체가 점점 분명하게 노출되는 흐름에 발맞추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그의 고난을 구체화해 나간다. 예수의 부활을 체험하고 예수가 겪은 고난의 의미를 깨닫고 나서야 실패를 극복하고 제자를 회복할 수 있다. 예수의 고난은 부당한 종교적인 권위와 정치적 권력의 합작이라는 역사적 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죽음은 단순한 자연사나 돌연사가 아니라 치밀한 음모의 결과인 셈이다. 수난을 통한 섬김을 강조한다. 예수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것은 극단적인 경우 자신의 목숨까지 포기해야 하는 이타적인 섬김의 삶을 전제로 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 한 가지는 예수와 제자들의 유기체적 운명을 ‘세례'로 표상한다는 것이다. 그 세례는 같은 길을 걸어가야 할 자로서 내보여야 할 순전한 동지애적 유대와 결의를 가리키는 세계이다. 그러나 결국 예수는 홀로 고독하게 수난과 죽음의 길을 통과하게 되고,그것은 가장 치열한 섬김의 행위로서 ‘만민을 위한 대속제물'이라는 신학적 의미를 부여받는다. 십자가의 고난이 예수에게 견디기 어려운 것은, 자신이 그 죽음의 잔을 마셔야할지 피해야할지 또 어느 쪽의 선택이 하나님의 뜻에 함치되는가 하는 점과 관련하여 아직 일말의 불확실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의 예언을 성취하는 걸 보여주고자 하는의도가 명백하더라도, 그렇다고 예수의 절망적인 고난의 현실이 경감되지는 않는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부대낀 죽음의 고난에 정직하게 반응한 것이다. 

  1. 연민과 치유의 신학 

마가복음에서 기적 이야기는 가장 많은 지면을 차지한다. 그것은 단순히 양적인 비중의 우위뿐 아니라 예수의 사역에 드러난 핵심적인 특징을 드러내 준다. 예수의 사역은 주로 치유 활동이었다. 인간의 생명에 대한 배려를 그 무엇보다 선행 가치로 여긴 그의 신학적 지향점을 반영한다. 치유 활동이 결과적으로 예수에게 대중적인 지명도를 높여준 것은 사실이지만 예수께서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고자한 것은 아니었다. 예수의 치유 활동은 한 개인의 삶이 육체적・정신적・영적 결핍을 떨쳐 버리고 회복되어,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한 상태로 되돌아가게 된다. 예수에게 이 치유 활동은 그 정치적 적대자들에게 적잖은 반발을 야기한다. 먼저 안식일 논쟁의 경우가 그 하나라면, 또다른 하나는 그의 치유 능력이 어디서 발원하느냐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알세불 논쟁이다. 예수가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 귀신의 두목인 바알세불의 힘에 의탁한 것이라고 예루살렘의 율법학자들이 진단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예수는 사탄이 사탄을 내칠 수 없다는 영적 세계의 질서를 앞세워 그 트집 어린 논리를 반박한다. 유대인 예수는 애당초 이방인인 그 여인을 걸쭉한 입담으로 개처럼 취급했지만, 그는 그 개 됨을 자처함으로써 자신과 같이 천한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은택이 필요함을 당당히 역설한다.  

마가복음은 그 문체로 주목되어야 할 복음서이다. 상징과 은유의 언어가 별로 사용되지 않고 사건 전개 위주로 짜여진 마가복음의 성근 문체는 예수에 대한 그리스도론적 채색을 하기에 썩 어색하다. 이러한 문체적 특징은 뒤집어 보면 마가복음이 예수와 그의 사역을 둘러싼 사실 묘사에 비교적 적절한 것이었음을 간접적으로 알려준다. 뜸을 들이지않고 ‘하나님 나라'라는 예수의 핵심 메시지로 직행하며 일관되게 십자가 고난의 의미를 물고 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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