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Jan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많은 것이 변화하게된다. 생각이 변하고 환경이 변하고 가치관이 변한다. 무엇 하나 먼저 변했다고 할 수 없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하게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런 자연스러운 세대에 따른 차이와 다름을 그저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살아보지 못한 각자의 인생이기에 모든 것을 이해할 수도 모든 것을 부정할 수도 없는 것이다. 유행으로 예를 들어보자. 유행은 1년에도 몇 번씩 바뀐다. 옛날에 유행했던 것이 다시 한번 유행하는 경우도 있다. 또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유행을 하기 시작하면 갑자기 좋아보이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생각도 유행에 갇혀 다른 세대의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이 살아오면서 무의식 중에 박혀버린 가치관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다른 나라의 문화를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그저 이해해줄 필요가 있다. 사람의 생각은 그 무엇도 '틀리다'고 정의할 수 있는건 없고 그 무엇도 '맞다'고 정의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아르카디는 니힐리스트인 바자로프를 존경했고 사상적 스승으로 따르기까지 하였지만 바자로프와 같이 모든 전통과 원칙을 배격하지는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이 두 친구의 결말을 볼 필요가 있다. 바자로프는 결국 사랑이라는 감정 속에서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였다. 그와 반대로 아르키디는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우리는 무엇이든 단 한가지만을 고집할 수는 없다. 모든 것에는 한계가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생각의 폭이 넓어졌다는 뜻이 아닐까.

 
바자로프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자신을 니힐리스트라고 하며 허무주의의 삶을 살아가던 바자로프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 것이다.

 
“그럼 당신은, 당신의 말을 빌리자면⋯⋯ 제가 자제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단 말인가요⋯⋯" "그래요."바자로프가 일어나서 창 쪽으로 걸어갔다. "그래서 당신은 이 자제심의 원인을 알고 싶다는 말이지요? 제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고 싶다는 말이지요?”“그래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놀라움을 느끼면서 그녀가 되뇌었다.“화내지 않으실 겁니까?”“화내지 않아요.”“화내지 않는다고요” 바자로프는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섰다. “그럼 말하죠.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바보처럼, 미칠 듯이⋯⋯ 자, 이제 당신의 목적을 이루셨군요.”오딘초바는 두 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바자로프는 창문 유리에 이마를 꼭 대고, 숨을 헐떡이면서 눈에 띄게 온몸을 떨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젊은이의 수줍은 떨림도 아니고, 첫 고백의 달콤한 공포가 온몸을 사로잡은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가슴속에서 몸부림치는 욕망이었다. 증오와 닮은, 아마도 증오와 비슷한 강하고 고통스런 욕망이었다⋯⋯ p.162~163 


하지만 나는 이 글에서 허무주의자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건 아니다. '허무'에 대해, 아마 이 세상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느꼈을 그 허무라는 감정에 대해 얘기해보려한다.


'주님께서는, 사람의 속생각이 허무함을 아신다.' (시94:11)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허무함을 아신다고 성경에 기록되어있다. 하지만 과연 허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감정일까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려는 사탄의 계략 중 하나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무언가에 빠져버린다는 것. 즉, 우리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경지로 넘어간다는 것은 대부분 사탄이 준 것이라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무엇이라도 우리가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게는 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허무라는 감정을 느꼈을 때, 우리는 그 감정에 빠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부정하게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의 가치를 깎아 내린다. 그리고 결국은 자신의 존재 가치와 자신의 인생, 자신의 삶을 쓸모없다 생각하게 된다. 

자신이 달성한 목표를 이루지 못하였을 때 혹은 자신이 열심히 노력한 것에 대한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우리는 허무함을 느낀다. 이러한 경우에는 조금 낮은 목표를 세우고 그것들을 달성해나가는 연습을 하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계속해서 허무함을 느끼는 이유는 자신의 내면에서 자꾸만 높은 목표를 세우기 때문이다. 자신이 세운 목표를 그 목표에 대해 훨씬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을 쏟은 사람과 비교하며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쏟지않은 채 그 경지에 도달하고 싶어한다. 그러면 계속해서 실패한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될 것이고 이러한 상황이 계속 반복된다면 결국 허무한 감정에 빠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현재 처한 상황과 우리의 상태, 우리의 마음가짐에 따라 목표를 달리 설정하고 또 그 목표를 이루기위한 노력도 열정도 의지도 그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우리가 하는 모든 일과 그 결과에는 우리의 감정이 뒷받침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허무한 감정에 빠지게 된다면 우리의 목표를 없어질 것이다. 목표없는 삶은 과연 진정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사탄이 준 것들은 우리를 무한굴레에 빠지게 한다는 것을 명심하여야한다. 하나님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탄의 계략 속에서 하나님만을 붙잡고 의지하며 살아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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