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라, 이거 다이애나한테 절반만 나눠 주면 안 돼요? 다이애나한테 반을 주면 나머지 반이 두 배로 맛있을 것 같아요. 그 애한테 뭘 준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하거든요."
우리는 무언가를 얻고싶어한다. 물질적인 것들뿐만 아니라 권력, 사랑도 포함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다른 사람들과 나누지 않았을 때 과연 만족감과 행복을 줄 수 있을까? 우리가 옷을 사고 차를 살 때 왜 비싼 돈을 주고 명품을 사고 외제차를 사려할까? 옷과 차가 생겨난 본래의 목적을 생각해본다면 그냥 몸을 가릴 수 있고 빠르게 이동할 수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우리의 내면에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위해, 즉 ‘반응’을 원하는 마음이 누구나 자리잡고 있다. 우리가 가진 것을 남이 부러워하고 인정해줄 때 우리는 만족감을 얻는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타인의 인정과 자신의 만족감만으로는 얻을 수 없다. 나를 통해 다른 누군가가 행복을 얻었을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무언가를 얻었을 때 오는 행복은 누구나 다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주었을 때, 남의 행복을 마음으로 느낄 때에 오는 행복은 아무나 경험할 수 없다. 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할 때야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을 주기만 한다면 혹은 받기만 한다면 그건 완전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자녀인 우리 모두를 사랑하신다. 하지만 세상의 사람들 중에는 그 사랑에 응답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응답하지 않음으로써 그 사람들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없다. 이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사람의 모든 행동에 담긴 본질적인 목적은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남과의 교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불행, 즉 우리를 행복하지 못하게 하는 그 무언가도 남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남을 통해 행복해지는 것일까 불행해지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아무도 한가지로 단정지을 수 없을 것이다. 다만, 한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교제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분명 살아있는 교제를 원한다.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것은 생명을 나누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계에 우리의 시간을 쏟는다면, 기계에게 우리의 생명을 준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생명을 빼앗기고 만다. 그렇게 빼앗긴 생명은 사람과의 교제에서야 다시 되찾을 수 있다. 이것이 사람들에게서 오는 불행을 피해 혼자가 된 사람들이 다시 사람들 속으로, 그 불행 속으로 오는 이유가 아닐까싶다. 불행이라는 사탄의 속임수에 가려졌던 행복을 다시 찾기 위해서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절대 혼자 있으라 명하지 않으신다. 우리의 행복을 그 누구보다도 진정으로 원하시는 분의 말씀이야말로 진리가 아닐까.
모든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오지않았음하는 순간을 마주한다. 하지만 그 순간들이 예상대로 정말 힘든 순간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매우 유익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모든 일은 자신이 마음가짐에 따라, 행동에 따라 달라지고 그 모든 일들이 모여 우리의 인생은 달라지게된다. 하지만 우리는 내 마음조차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바라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람들은 내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에 너무나 많은 에너지와 감정을 소비하며 정작 내가 해야할 일에 에너지와 감정을 쏟지 못하고 있다. 앤의 상황을 예를 들어보자. 앤이 다시 지옥의 고아원으로 돌아가야하는 상황에서 앤이 우울한 감정에 빠져있다고해서 초록지붕집에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건 앤 스스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직 마릴라의 생각과 결정에 달린 일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앤은 이렇게 말한다.
“있잖아요. 전 즐겁게 가기로 마음먹었어요. 이제껏 마음만 먹으면 뭐든 다 즐거워할 수 있었거든요. 물론, 아주 단단히 결심을 해야 해요.”
여기서 우리는 인생을 배울 수 있다. 어떠한 일의 좋지않은 결과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 일을 기분 좋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생각때문에 현재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놓친다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생각을 조금 바꿔 이미 정해진 미래는 그대로 두고 지금 나의 상황, 나의 현실, 나의 현재에서 최선을 다하고 배우기위해 노력한다면 결과가 조금은 기분 좋게 바뀌지 않을까? 앤이 초록지붕집에 살게된 것처럼 말이다. 걱정은 감정 소비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이다. 걱정이라는 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근심의 마음을 말한다. 이로써 걱정을 하는 상황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이미 결정된 미래의 일이나 혹은 내 마음 속에 그 일을 하고싶은 마음이 있을 때의 일어나는 감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지도 않고 내가 할지말지 결정할 수도 있는 일이라면 굳이 걱정을 하면서까지 그 일을 왜 하겠는가. 사람들은 걱정되는 일에 대해 최악의 상황을 자꾸만 상상한다. 현실은 그게 아닌데 상상속의 일로 에너지와 감정을 소비하는 것이다. 그 때 일어나는 에너지와 감정의 소비는 상상속의 최악의 시나리오에 한발 더 다가가게 할 뿐이다.